가사관련형사소송 친족성범죄, 시간이 흘러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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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30본문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울타리인 ‘가족’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특성상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피해자가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가족을 무너뜨린다"라는 죄책감 속에서 스스로 입을 다물기 때문이죠. 모든 만사가 시간이 약이라지만 성범죄 피해자들의 시간은 그 시간에 멈춰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야 “이제라도 바로잡아야겠다"라는 심정으로 고소를 결심하지만, 현실은 차갑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거나, 오히려 2차 가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뒤늦게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두 번 상처받지 않고,
과거의 상처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사촌도, 이복형제도… 처벌 가능한 친족성범죄
학창 시절, 사촌 오빠에게 반복적인 강제추행을 당했던 피해자 C 씨. 너무 어렸을 때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조금 나이를 먹은 뒤에는 가족이 깨질까 두려워 끝내 말하지 못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불안과 우울이 반복되었고, 가족 모임에서 사촌 오빠를 마주칠 때마다 그날의 공포가 되살아났죠. 결국 C 씨는 결심하셨고, 저희 사무실을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촌 오빠도 친족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나요?” 저는 단호히 '가능하다'라고 답했습니다.
친족성범죄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가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범죄입니다.
이때 친족은 부모·형제만이 아니라, 4촌 이내의 혈족과 인척, 동거 친족, 사실상 가족처럼 지낸 관계까지 포함하는 개념인데요.
사촌·이복형제·의붓 자녀도 모두 해당되죠.
형량 역시 일반 성범죄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형법상 강간은 3년 이상 징역, 강제추행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도 가능하지만, 친족성범죄는 다릅니다. 친족 강간은 7년 이상, 친족 강제추행은 5년 이상 징역이며 벌금형 자체가 없습니다.
벌금형 자체가 없습니다. 집행유예도 쉽지 않은 중대한 범죄로 다뤄지는 범죄인 것이죠.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가족관계를 배신했다는 점, 피해자가 어린 나이에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 해악과 피해의 깊이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의 흔한 방어논리에 지지 마세요
하지만 피해자가 뒤늦게 겨우 용기를 내어도 현실은 대부분 냉정합니다. 수사기관에서조차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적 장난이었을 뿐이다.” 본 사건에서도 가해자인 사촌 오빠는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미 수년이 지나 피해자가 뚜렷한 증거를 내놓기 어렵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한 대응이었죠. “증거가 없으니 결국 내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던 겁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좌절부터 합니다.
어렵사리 낸 용기인데, 가해자도 부인하고 수사기관마저 증거가 필요하다 하니, “차라리 덮고 살자”라며 다시 침묵 속으로 숨어버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우리 법은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증거로 봅니다.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은 신빙성을 판단하는 제일 중요한 기준 중 하나입니다.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피해를 입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진술이 흔들림 없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유죄로 인정될 수도 있죠.
'그럼 피의자가 억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냐?'
그렇지 않은 이유는, 가해자의 주장·해명·부인 간 신빙성 비교가 수차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관된 주장을 하는 쪽과 주장이 흔들리는 쪽이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진술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긴 하죠.
그래서 당시의 시점, 가해자의 고의성, 피해가 이어진 흔적(정신적 피해 등), 그리고 가해자의 태도가 함께 드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부족해도 실형 판결을 받아내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제가 중요하게 본 포인트는 사건의 시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해자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반복하는 이상, 추상적인 진술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해자가 떠올린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라는 단서를 근거로 주민등록 초본과 학적부를 대조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그 시기에 C 씨가 친척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 토대 위에서, 가해자의 모순된 발언(“네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을 녹취로 확보했고, 피해자가 받아온 정신과 진료 기록도 함께 제출했습니다.
이 자료들은 시점이 특정된 사건을 뒷받침하였고 의뢰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신빙성 있게 인정했고, 가해자에게 5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제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 알겠어요” 실형 판결을 받은 것보다 그전까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셨던 C 씨가 이 판결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 더 유의미한 사건이었죠.
친족성범죄 사건은 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증거가 없는 건 오히려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시점을 특정하고, 정황을 일관되게 맞추며, 사실·추정·불확실한 부분을 구분한 채 흔들림 없는 진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처가 분명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말은 흔들릴 수 있어도 피해자의 진술은 끝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혼자 숨지 마십시오. 묻어둔 상처를 꺼내놓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상처를 꽁꽁 싸매두면 의외로 회복이 더딥니다. 공기 중에 꺼내놓은 상처가 더 빨리 아물듯이, 마음의 상처도 그렇습니다. 감추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질끈 눈을 감고 용기내시면 좋겠습니다. 잠시의 고통스러운 과정은 제가 함께 돕겠습니다.
FROM. 이혼·가사 전문 변호사 전지민 변호사